사이버 친구 여러분, 2024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제가 정신을 소모하며 의견을 쏟아 내고, 일부 예민한 분들이 자신을 빗대어 불쾌해할지도 모르는(그러지 않기를 바랍니다) 때가 다시 왔습니다. 먼저 이것은 《연회는 멈출 수 없다》(이하 《연》)의 감상문이지 연말 결산이 아니라는 점을 밝힙니다. 혹시 여러분의 생각과 비슷하거나 완전히 다르더라도 신중히 읽고 너그럽게 봐 주세요 :) 작년(엄밀히 말하면 재작년) 《“나”가 돌아왔지만 “나”는 곧 다시 출발한다》 (이하 《돌아옴》)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만난 다양한 동료와 인터넷 전체의 업무 환경에 대해서는 더 말하고 싶지 않다(4년을 관찰했지만 자세히 말할 만한 것을 찾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연》이 내 관찰의 70퍼센트쯤을 거의 모두 말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1. 칠 할
영화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은 후젠린이 매우 운이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를 믿고 도와주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의 인격적 매력과 노력, 그가 처한 환경과 시대 모두와 관련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주변 통계에 따르면) 인터넷 직장의 어두운 면을 만났을 때, 용기를 내어 나서지 못합니다. 마음을 다잡고 나서더라도 지혜롭게, 시기와 장소와 사람을 활용해 눈앞의 문제를 잠시 해결할 수 있을지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연》은 극적인 희극의 방식으로 과장하면서도 어색하지 않게 몇 가지 답을 주었지만, 내 마음에는 더 많은 현실의 질문을 남겼습니다. 사람들은 “여지를 남겨 두면 나중에 다시 만날 수 있다”는 식으로 적당히 멈춥니다. 이는 칭찬도 비난도 아닌 타협입니다. 영화의 흐름을 돌아보면, 초반의 적절한 복선이 후젠린을 선택의 기로에 세우지 않았다면, 연회의 절정 장면에서 나도 그렇게 크게 감동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것이 영화의 매력입니다. 가치 있는 생각을 주고 삶에 쉽게 타협하지 않을 힘을 줍니다. 최근 비슷한 소재의 지난해 작품 《망가진 일의 엘리트》도 보았습니다. 시트콤인 이 작품은 여러 직장 문제를 드러내는 동시에, 적절하거나 황당한 방식으로 하나의 답을 시도합니다. 여기서 오늘날 인터넷 업계의 특징도 엿볼 수 있습니다. 다른 업계보다 젊지만, 다른 업계와 마찬가지로 뒤섞여 있습니다. 이는 다른 무엇 때문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인간 본성 때문입니다.
2. 영화 밖에서
《돌아옴》에서 나는 이렇게 썼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인간성의 규칙이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내가 사람을 대하는 방식도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영화 속 쉬윈펑은 이야기의 핵심 인물 중 하나로, 이에 대한 자신만의 논리를 갖고 있습니다. 그 말에는 옳고 그름이 없고, 심지어 일리가 없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이야기 속 인물은 선역이든 악역이든 필요한 것을 얻을 뿐, 원하는 것은 결코 얻지 못한다”][주1]*는 말처럼, 시대의 흐름에 올라타 스스로 정의한 최고가 되어 평온한 삶을 보낸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세상은 언제나 공평하지 않습니다. 이상주의자가 혼자서 그 불공평에 맞서면, 대부분 허무주의자가 되어 허망하게 죽거나 평범한 밤에 스스로 생을 끝냅니다. 다행히 충분히 운이 좋다면 어떤 문제는 즉시 답을 내릴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답을 찾는 길에는 길이 얼마나 굽이치든, 누군가가 짧든 길든 함께 걸어 줍니다. 삶의 한가운데 있는 나에게는 사람, 집단, 기호, 사상을 구분하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은 정의를 지나치게 일반화해 문제를 논하다가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부정확하고 감정적인 표현을 방치해 상황을 악화시키기도 합니다. 심하면 환경 전체가 오염되어 역사의 각주가 되고, 맹목적으로 따라가는 우리에게 경고가 됩니다. 이런 일을 너무 많이 보아서(물론 내 경험이 제한적이므로 객관적으로는 많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가끔 절망합니다. “죽은 뒤에 홍수가 나든 말든”이라는 태도를 함부로 판단할 수는 없지만, 일을 바라보는 다른 각도, 다른 답도 있을 것입니다. 다행히 《돌아옴》에서 말했듯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누군가는 자기 방식으로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내가 답을 찾을 힘을 줍니다. 답을 점점 더 많이 찾을수록 질문도 늘지만, 마음은 조금씩 안정됩니다. 이렇게 말하면 너무 공허해 보일 수 있습니다. 나는 그저 이야기 밖에서 지나치게 감상적인 말을 늘어놓고 싶지 않을 뿐입니다.
3. 이야기
농담처럼 이런 말이 있습니다. “허풍을 떠는 건 사실 이야기를 하는 거야.” 처음 들으면 적절한 비유가 아닌 것처럼 느껴집니다. 반대로 나는 이런 표현을 좋아합니다. “이야기를 하는 것은 허풍을 그리는 것이다.” 예술 창작의 결과는 이야기입니다. 앞으로도 코드 밖의 매체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적어도 2023년에는 마음이 그렇게 나쁘지 않았으니, 2024년에도, 관찰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는 계속 유지할 수 있겠지요. 여기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에도 모두 건강하고 마음이 단단하기를 바랍니다 :) [주1]: 《이야기하는 기술》 닐 게이먼 마스터 클래스-빌리빌리 —— 2024.01.01에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