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은 조각조각의 문단이고, 문단 밖에는 글로 표현할 수 없는 소리가 있습니다. 나는 태양 아래 그림자처럼 달리고, 뒤의 그림자는 나를 바짝 따라옵니다. 나는 몇 마디를 말해 지금 화면 앞에 앉아 있는 나에게 전하려고 합니다. 내가 과거에 답하며 키보드를 두드릴 때마다 누군가는 나를 방해할 방법을 찾습니다. “뭐 하고 있어?” 그가 이렇게 묻는 것은 처음도, 마지막도 아닙니다. 모든 것을 기록해야 합니다. 사람은 그 안에 직접 있어야만 글의 얕음을 알 수 있다고 나는 답했습니다. 허리와 등이 아프고 다리가 저립니다. 파스에서 흔히 볼 법한 단어들 때문에 적당한 자세를 찾지 못하고, 결국 화면과 키보드를 보지 않은 채 오랜 감각에만 기대 소파에 누워 한 문단, 또 한 문단을 입력합니다. 그리고 다시 화면을 확인해 내가 쓴 글에 큰 문제가 없는지 살핍니다. 이것이 내 생각을 되짚는 방식입니다. 열 손가락은 직관의 기관이 되고 눈은 교정 업무를 맡습니다. 예전 사람들에게는 이런 행운이 없었을 것입니다. 머릿속 말을 꺼내 녹음기에 기록하거나, 실제 붓과 펜과 종이를 사용했겠지요. 기록 방식은 점점 늘었고, 나는 지금 노트북 화면과 그 위의 키보드와 그 안의 중국어 입력기를 선택했습니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릴 때마다 나는 즉시 다시 달려야 합니다. 침대에 누운 아버지 곁의 탁자에서 무거운 유리병을 집었습니다. 어머니가 “조금 더 데워”라고 하자 나는 “아까와 같은 정도지?”라고 되물었고, 방을 나서며 어머니가 그렇다고 답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부모님의 방이자 집의 안방에서 주방까지, 굽이진 길을 감안하면 빠르게 걷는 편이 달리는 것보다 낫습니다. 유리병의 젖꼭지 뚜껑을 열고 정수기의 버튼을 누르자 물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5초도 지나지 않아 다시 버튼을 누르고 뚜껑을 닫아 안방으로 돌아가 아버지에게 건넸습니다. 아버지는 조금 많은 것 같다고 했고, 어머니는 괜찮다고 했습니다. 나는 이제 예전과 다르며 집에 분유도 물도 충분하니 묽게 느껴지면 분유를 더 넣으면 된다고 말했습니다. 밀가루가 많으면 물을 더 넣고 물이 많으면 밀가루를 더 넣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나는 멈춰 거실로 돌아와 그가 엎드린 채 휴대폰으로 이쪽에 글을 동기화해 쓰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성간 네트워크는 정말 좋은 물건이야.” 그가 말했습니다. “네가 바쁠 때 중간에 빠진 장을 보충할 수 있으니까. 네 글은 한 편뿐이 아니잖아.” “예전에는 이런 일을 좋아하지 않았잖아.” 내가 말했습니다. “탐정 일을 그만둔 뒤 한가해진 시간에는 뭔가 기록해야지.” 그가 답했습니다. 태양이 기울고 그림자가 내 옆에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누나와 내 사촌 누나가 고모부를 데리고 왔습니다. 화면 너머로 사촌 형과 통화했고, 그들이 떠난 뒤 다시 화면 앞에 앉았습니다. “무력한가?” 나는 혼잣말했고 이것이 질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병세를 말하는 거라면 그렇지.” 그는 어머니의 어머니와 동생들, 내 사촌을 맞이하며 말했습니다. 2024년 5월 3일. 예전 같으면 이 시간은 부정확하거나 눈에 띄지 않는 방식으로 어떤 작품의 어느 장 첫머리에 놓였을 것입니다. 화면 왼쪽 위에는 18시 XX분이 표시되고 휴대폰 뒤에는 조명의 그림자가 있었습니다. 휴대폰을 조금 들어 올리자 카메라가 흔들렸고 화면은 만화의 한 칸처럼 보였습니다. 그 칸에는 부모님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어두운 조명 아래 검게 보이는 짙은 붉은 옷을 입고 허리를 굽혀 아버지의 등을 두드리고 있었습니다. 등에는 며칠 동안 빨지 못하고 갈아입지도 못한 흰 옷이 걸쳐져 있었습니다. 오늘 나는 비슷한 동작을 했습니다. 다만 어머니보다 키가 커서 아버지의 등을 두드릴 때 더 낮게 숙여야 했습니다. 역류한 것을 맡지 않으면서도 아버지와 같은 동작을 반사적으로 할 수 있고, 충분한 근육과 혈액이 온기를 주지 못하는 팔에 머리를 부딪칠 정도로 낮게 숙여야 했습니다. 나는 셔터를 누르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다른 남동생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나는 안방에 남아 책과 휴대폰을 넘기며 가끔 앞의 동작을 반복했고, 곧 하루가 끝났습니다. 새벽에 잠들었다가 아침에 힘겹게 깨어 아버지의 삶을 떠올리며 수천, 수만 자로 써 보려 했지만 백 자도 쓰지 못하고 포기했습니다. 너무 많았습니다. 먼저 다른 것을 써야겠습니다. 전날인 2024년 5월 2일은 아버지가 퇴원 수속을 하던 날이었습니다. 퇴원은 호전을 의미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아버지가 더 편히 쉴 수 있게 하는 선택이었습니다. 들것에 누운 아버지는 시끄럽고 습하며 가끔 담배 연기가 들어오던 병실이 있는 1층을 떠났습니다. 어쩌면 조금 더 편해졌을지도 모릅니다. 병원에서 우리를 태우고 돌아온 운전사는 이런 일을 하려면 마음가짐이 좋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나는 뒷좌석에서 조용히 들었고, 옆에는 들것에 누워 눈을 감은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호흡기와 소화기의 혼란으로 아버지는 몇 년 전 들었던 느린 비명 같은 꼬르륵 소리를 냈습니다. 나는 창밖을 바라보며 눈을 움직이고, 그 소리를 듣지 못한 척했습니다. 5월 1일과 5월 2일 사이, 세 시간이 흐르는 동안 아버지는 이미 장례에 관한 일을 당부했습니다. 그보다 앞선 청명절 무렵에는 지금보다 기력이 있어 우리 부축을 받으며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더 앞선 3월 9일에는 탁자 옆 산소발생기가 시끄러워 쉬기 어렵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2주마다 교체해야 하는 5미터 비강 산소관, 100시간마다 교체해야 하는 필터 솜, 서재에 둘 무정전 전원 장치, 연결용 멀티탭을 모두 긴급 배송으로 집에 보냈습니다. 무정전 전원 장치를 조립하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습니다. 장치 자체가 충분히 안전하고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실험해 보니 상용 전원이 끊겨도 장치의 경고음이 우리가 대응할 시간을 충분히 주었습니다. 가능성이 낮은 사고가 발생해도 배터리는 구급차가 올 때까지 충분히 긴 시간을 제공할 수 있었습니다. “충분히 긴 시간?” 그가 물었습니다. “그럼 지금은?” 나는 5월 4일로 되돌아왔습니다. 그날 이후에도 산소발생기는 문을 닫은 욕실에서 낮고 무거운 소리를 냈습니다. 비강 산소관은 사람을 시켜 새로 뚫은 작은 구멍을 지나 끝의 배출구가 아버지의 콧구멍에 걸려 있었습니다. 정전도 없었고 부저 소리도 없었습니다. 다른 소리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어제와 비슷한 소리를 들으며 듣고 또 조합했습니다. 새로운 소리가 머릿속에 나타났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밤이었습니다. “네 귀는 너무 예민해. 계속 쓰면 피곤할 거야.” 그가 말하며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건넸습니다. 나는 헤드폰을 받아 충전 케이스에 다시 넣었습니다. “조금 더 듣고 싶어.” 창밖의 비는 며칠 사이 점점 거세졌지만 어떤 소리도 덮지 않았고, 오히려 지난 일들을 내 머릿속에 함께 울려 퍼지게 했습니다. 바다 위에는 시간이 실려 있습니다.
긴 이별
